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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뉴스]2002년 '박근혜·김정일 4시간 밀담' 전모

[경향신문]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씨의 회고록으로 세간이 시끄럽습니다. 해당 회고록에 노무현 정부에서 북한의 의중을 반영해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을 결정했다는 내용이 나오자 여권은 ‘친북 행위’, ‘인권을 외면한 처사’ 라며 문재인 전 대표에게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그러자 문재인 전 대표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이 관련 부처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다수결로 결정한 사항”이라고 응수했습니다. 또 야권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도 2002년 북한을 방북했지만 당시 친북 행위라 공격하지 않았다”다며 반박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에 다녀왔군요. 어떤 경위로 갔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당시 경향신문 기사를 토대로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2000년부터 방북 고려
박근혜 대통령의 방북이 논의되기 시작한 건 2000년 북한이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 였던 박근혜 의원에게 초청장을 보내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북한은 노동당 창건 행사를 앞두고 청와대를 비롯해 민주노동당 등 30곳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 등 35명에게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당시는 2000년 6월15일 이뤄진 남북정상 회담 직후로 남북 화해무드가 무르익을 무렵이었습니다. 하지만 흐지부지되어 버렸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관계자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주변의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박근혜 의원은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금강산 관광 등 일체의 방북활동에 관심을 끊고 지냈습니다.
 
■박정희와 김정일의 ‘2세 만남’ 성사
박근혜 대통령의 2002년 방북 사진. 왼쪽부터 당시 신희석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 박근혜 의원,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 자크 그로하·지동훈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장
하지만 2년 후인 2002년 5월 11일, 당시 박근혜 의원은 결국 3박4일 간 북한을 방문하게 됩니다.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가 남북협력사업을 펼쳐온 ‘유럽-한국재단’ 이사진을 초청함에 따라 해당 재단 이사 자격으로 방북하게 된 겁니다.
 
 박근혜 의원은 당시 방문을 앞두고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이 돼 남북간에 평화 증진을 위해 협력하고 우방과도 힘을 합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가 북측 공작원으로 알려졌던 문세광에 의해 살해됐던 것과 관련해서도 “개인적으로 불행을 겪은 사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남북간의 평화 공존과 정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박근혜 의원의 대북관에 변화가 온 것 이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특히 박근혜 의원의 방북은 1960~70년대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의 ‘2세 간 만남’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당시 방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이뤄지느냐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하지만 방북에 나서는 시점까지도 면담 여부와 일정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최상의 예우’
 
북한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당시 북측으로부터 융숭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초 박 대통령은 고려항공을 이용해 북한에 입국할 예정이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용기를 제공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방북 당시 묵었던 백화원초대소의 같은 방도 숙박처로 제공했습니다.
 
북한에 도착해서는 당시 김용순 북한노동당 중앙위 비서, 림동옥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 북한 대남분야 실세들과 만났습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을 ‘여사’로 호칭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합의한 ‘7·4 남북공동성명’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기사는 “북측이 보수성향의 박 의원에 대한 배려를 통해 남측에 포괄적 대화의지를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당시 박대통령도 “북측으로부터 큰 대접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김정일과 4시간 면담
 
한편 초미의 관심사였던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2세들 끼리의 면담’도 성사됐습니다. 이 면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서울에 가보고 싶다” “가게 되면 동작동 국립묘지(현충원)를 방문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면담 분위기는 좋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시 한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현충원 참배의사를 밝힌 것은 과거 어두웠던 남북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당시 면담에서 김위원장은 북한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에 대해서도‘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일로, 미안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 면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국군 포로 생사 확인과 남북 대표팀 축구대회 등을 제안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이 원내대책회의에서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지난 2002년 방북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단독 비밀 회담을 가진 것에 대해 내용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
하지만 한달 반 가량 지난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이 서해 NLL을 침범해 ‘제2연평해전’이 발생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집니다. 그러나 방북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 약속은 일부 지켜집니다.
 
2002년 9월,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북한이 이례적으로 국군 포로의 생사 확인을 먼저 제안합니다. 당시 북측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방북 당시 한 제의를 김위원장이 받아들인데 따른 조치”라고 전했습니다.

또 같은 달 상암경기장에서는 남북한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열렸습니다. 이 역시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합의에 따라 치러진 것입니다. 정몽준 전 의원의 자서전에 따르면 당시 박근혜 의원은 경기에서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약속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냐며 화를 냈고, 붉은 악마 응원단이 대한민국을 외치자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며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일 자신의 저서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서로 마음을 열고 이끌어낸 약속들을 가능한 한 모두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이후 2004년 박근혜 대통령은 17대 국회의원 선거 기간 중 “17대 국회가 개원한 후 초당적 대북기구 설치를 추진하겠다”며 북핵 해결을 위한 2차 방북의사를 밝히는 등 이 때까지도 남북문제에 있어서 전향적 접근의사를 종종 피력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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